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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하와이로 떠난 최초의 한국인 이민자들: 1903년 제물포에서 시작된 여정
1. 서론: 한국인의 첫 공식 해외 이민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1903년 1월 13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출항한 한 척의 배가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습니다. 이 배에는 102명의 한국인이 타고 있었고, 이들이 바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공식 해외 이민자들입니다. 목적지는 바로 하와이 사탕수수밭. 이들의 삶은 한국인의 이민 역사에서 상징적인 출발점이며, 동시에 고난과 희망이 교차하는 디아스포라의 첫걸음이었습니다.
2. 하와이 이민의 배경: 대한제국과 하와이 노동계약
하와이로 향한 이유
1902년, 대한제국은 국내 경제의 불안정,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 등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에 반해 하와이는 미국의 영향 아래 사탕수수 농장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었고, 이곳의 노동력 수요가 증가하던 중이었습니다.당시 하와이 플랜테이션 협회(HSPA)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일본, 중국 외에 한국과 노동계약을 맺기로 결정했고,
이후 대한제국 정부는 ‘사민(徙民)’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이민을 허가하게 됩니다.출항과 도착
- 1903년 1월 13일, 갤릭호(Gaelic)를 타고 102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했으며,
- 이들은 모두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계약되었고,
- 이민자 대부분은 농민, 노동자 계층으로 문맹률이 높고,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 하와이 이민자의 삶: 혹독한 노동과 공동체의 결속
하루 10시간 이상, 낮은 임금
하와이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높은 온도, 습도, 열악한 주거 조건 속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하며, 매우 낮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 계약 조건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체결되었고,
- 의료 서비스나 휴식 시간도 보장되지 않았으며,
- 언어와 문화적 장벽은 이들의 고립감을 더욱 키웠습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돕고, 자녀 교육을 고민하며, 한인 공동체를 조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협동과 자립: 교회와 한글학교의 시작
- 초기 이민자들은 모여서 교회와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은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고,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 사회복지, 교육, 소통의 중심지였습니다. - 또한 한글학교를 세워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쳤고,
이를 통해 2세, 3세대가 정체성을 유지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독립운동의 물결도 함께
이민자들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삶만을 살지 않았습니다.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국민교육회와 같은 조직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조국의 현실을 알리는 활동도 전개했습니다.하와이는 단지 노동의 장소가 아니라, 국외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당시 한인 사회는 스스로를 “조선민족의 대변자”로 여기며,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4. 하와이에 남은 한국 이민자의 흔적
하와이에는 지금도 당시 이민자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 하와이 한인 이민사 박물관(Korean Immigration Museum)
- 초기 이민자들이 세운 한국계 교회
- 매년 1월 13일, 한국 이민의 날로 지정되어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하와이 주정부와 한인 사회는 이를 통해 한국 이민의 역사적 가치와 공동체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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